저는 재수생이고 내년에 대학을 가는 여학생입니다.
대학을 빨리 붙어서 알바를 알아보다가 집 근처의 y산업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공장에서는 락앤락 용기와 같은 밀폐형 용기를 생산했는데, 저는 그 용기들을 포장하거나 조립하는 일을 했습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점심 1시간) 일을 했는데 이 공장일이라는 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30~40초에 하나씩 용기를 뿜어내는 무지막지한 기계 옆에서 일하노라면 시간이 그렇게 느리게 갈 수가 없습니다. 한 20분 지났나? 하고 시계를 보면 10분 밖에 안 지난 것을 깨닫고 절망하게 되죠. 과장이 아니라 진짜 시간이 이렇게 느리게 갑니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시간은 절대적인 게 아닌 것 같다'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했죠..
같이 일하는 분들은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막내고, 학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 일한다는 것 때문인지 다들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사장님도 저를 참 좋아해 주셨습니다. 적어도 인간관계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없었죠.
공장에서 일하면 사람이 참 단순해집니다.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같은 일을 30초마다 반복해서 하니까요. 게다가 신체의 특정 부위만 계속적으로 쓰다보니 그 부위가 단련되는 것보다는 망쳐진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한마디로 참 힘들고 고독한 일인거죠. 한 3주쯤 지나니까 같이 일하던 다른 알바생들이 다 그만두고 저만 남았을 때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더군요.
그런데 그러면서 인생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됩니다. 부모님께 당연한 듯이 받아 썼던 이 돈이 얼마나 벌기 힘든건지 알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이 세상에는 이런 일을 천직으로 삼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불행하지는 않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곳에서 오랜 세월을 일하신 직원분들을 처음 뵈었을 때, 저는 솔직히 속으로 '참 안됐다. 얼마나 삶이 힘들고 불행할까.'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분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당신들 삶에 나름대로 만족을 하고 계시더군요. 그냥 자신의 적성에 맞는 천직으로 여기고 이 공장일을 묵묵히 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단순 노동자들을 불쌍하게 만드는 건 그들 자신이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 저마다 맡은 역할이 있는 거고, 각자의 위치에서 행복하면 그 일이 최고의 직장인거죠.
그리고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공부가 가장 쉬운 일이다'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공장일보다야 쉽겠지만, 공부도 정신적인 노동인만큼 정말 힘든 일이죠.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젊을 때야 서비스직종까지 할 수는 있겠지만, 나이 들면 기껏해야 이런 공장일 같은 단순노동이 전부입니다. 무엇이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공부를 해야하겠더라구요.
또 제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 중 하나가 '돈은 왜 버는 것일까'입니다.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더군요. 돈을 벌기 위해 9시간을 스트레스 받아가며 힘들게 일하면 정작 퇴근후에는 너무 지쳐서 돈을 쓸 곳도 없습니다. 사장님 가족도 마찬가지더군요. 사장님 사모님도 저와 다름없이 긴 시간동안을 매일 일하시는 걸 보면서 '저분들은 주말 저녁에 좀 더 나은 식사를 하기 위해서 돈을 버시나'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돈을 안 벌면 괜찮냐,하시면 그것도 아니죠. 그 때는 놀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노는 불상사가 발생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돈이 될 수 없겠더라구요. 돈을 버는 기쁨은 크지만, 그것을 벌기 위해서 우리는 그만큼 긴 시간동안을 스트레스받으면서 일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일을 안하면 돈이 없어 불안하구요. 결국 돈이라는 게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행복이 되주질 못합니다. 우리는 행복하려고 돈을 버는 건데도요.
그러자 결국엔 '내가 가장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조건 돈 잘 벌고 잘 나가는 직업이 아니라 매일매일이 즐거울 수 있는 일 말입니다. 돈 몇 푼 잘 벌기 위해 매일을 스트레스받느니 돈 몇 푼 덜 벌더라도 매일이 행복해야하는 것 아닌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여기까지가 제가 약 한 달간 공장에서 일하며 느낀 점들입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더니, 정말 그렇네요. 요즘 악덕 업주도 많아 흉흉하긴 하지만 아르바이트는 이제 막 성인이 되는 분들이시라면 꼭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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