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나오지 마"... 난 왜 맥도날드서 잘렸나
지점장, 계약만료 이유로 해고 통보... 다시 지원했지만, 채용 거부해
한가롭게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던 지난 9월 어느 일요일 오후. 내가 일하던 맥도날드 점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1년 동안 내가 일한 맥도날드 매장에선 평소 급하게 일할 사람이 필요할 때 나오라는 연락을 종종 했던 터라, 그런 전화인 줄 알았다. 하지만 통화내용이 다른 때와 달랐다. 점장은 내일 매장에서 단둘이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생각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점장은 "내일 만나서 이야기할 것이 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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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5일 서울 맥도날드 신촌점 앞에서는 세계 패스트푸드 노동자의 날 한국행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맥도날드 유니폼을 입고 발언하고 있는 사람이 나다.
ⓒ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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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점장이 무슨 말을 할지 짐작은 했다. 지난 5월에도 점장에게 불려간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근무시간 조작으로 인한 임금 미지급' 등 맥도날드의 부당한 노동환경을 증언하는 기자회견에 참여한 후였다. 점장은 "본사에서 연락이 왔었다"며 "네가 맞냐"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유니폼 입고 기자회견 하지 말라"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점장과 통화하기 한 주 전, 미국 패스트푸드 파업노동자들을 만난 일이 있기에 '그걸로 또 뭐라고 하려나보다' 싶었다. 그러나 점장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짐작을 넘어섰다. 점장은 나에게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동조합활동을 하는 것을 주변 동료들이 불편해 한다"고 말했다. 당황스러웠다. 당장 내 생계가 있는데,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니...
점장이 나오지 말라고 한 날이 계약만료일이기는 했지만, 분명 이틀 전에 한 매니저와 일하는 시간을 더 늘리기로 이야기가 끝난 상태여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말문이 막혀버렸다. 점장은 "네가 일을 하는 시간엔 나도 안심이 될 정도로 일을 너무나 잘 해주었지만, 어쩔 수 없다"며 "앞으로도 매장에 종종 놀러오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같이 일하자"고 '착한 어투'로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며 어쩔 수 없는 건가보다 싶었다.
맥도날드 동료 누구도 몰랐던 나의 퇴사
그러나 점장과 이야기를 끝내고 방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상황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휴식공간에서 쉬고 있는 동료들이 점장과 함께 나오는 날 보고 "오~ 이제 매니저 되는 거예요?"라 물었다. 내가 내일부터 맥도날드에서 일을 못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눈치였다. 오히려 한 동료는 내가 매니저로 진급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 말을 한 동료는 일을 한 지 2년이 넘어가는, 직급도 일반 크루가 아닌 크루를 가르치는 트레이너인, 매장의 소식통인 사람이었다.
동료들은 내 사정을 전혀 모르는지 온갖 질문들을 쏟아냈다. "맥도날드 그만 둔 거야? 왜?", "사정이 있어서 그만 둔거야?", "헐 당장 내일부터?", "난 너 노동조합 활동하는지도 몰랐는데?" 점장의 말과 달리 내가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동료들이 태반이었고, 일을 그만두게 된 걸 아는 동료는 한 명도 없었다. 서서히 왜 잘렸는지 납득이 안 되기 시작했다.
의문을 풀기 위해 3일 뒤부터 점장에게 연락을 했지만, 보름간 연락이 닿지 않았고 결국 매장으로 직접 찾아갔다. 주변 동료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동료들이 불편해 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이냐"고 물으니, 점장은 "네가 모든 알바들을 다 알아? 어쨌든 나에게는 그런 의견이 들어왔어"라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점장은 계약만료이기 때문에 계약만료의 이유가 무엇이든 정당하다고 했다. 하지만 정당하다고 인정하기엔 억울했다. 모든 알바들이 내가 계약을 연장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나도 이틀 전에 앞으로 일할 시간을 늘리기로 합의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다음날부터 나오지 말라고 할 줄 누가 알았을까. 당장 어떻게 다른 알바를 구해서 생계를 유지하라는 건지 속이 탔다.
시스템 오류 때문에 접수가 안 됐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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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케줄 담당 맥도날드 매니저와 나눈 카톡 내용.
ⓒ 이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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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항의하니 점장은 다시 매장에 아르바이트를 지원해보라고 했다. 온라인 지원서를 넣었다. 지원이 확실히 됐는지 몇 번을 확인했다. 그러나 3일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하는지 답답한 찰나, 아는 언니가 맥도날드에서 연락이 왔다고 했다. 지원한 지 몇 시간도 안돼서 말이다. 나와 비슷한 조건, 아니 나보다 안 좋은 조건으로 나보다 늦게 지원했는데도 말이다.
계약 만료 후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고, 한시라도 빨리 일자리를 구해야 했던 나는 채용 담당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매니저는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친구 핸드폰을 빌려 다시 걸었다. 매니저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거니 바로 받았다. 그리고 매니저는 "시스템 오류 때문에 지원서 접수가 안 됐다"고 했다. 매니저와 전화를 끊고 본사에 문의를 했다. 10일 만에 본사에서 답이 왔다.
'맥알바 지원 사이트의 오류는 아니다. 이전까지 매장에서 오류가 났다고 보고한 적도 없었다.'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날 해고한 것(점장은 해고가 아니나 계약만료라고 이야기하고 있다)이고, 항의를 무마하기 위해 뽑을 생각도 없으면서 다시 지원하라고 거짓말까지 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은 글로만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끝까지 해보기로 했다.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맥도날드의 노동환경은 끝끝내 고쳐지지 않는다. 그리고 맥도날드를 비롯한 아르바이트 사업장에서 노동조합활동을 하는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잘릴 것이다.
나의 노조활동이 불편한 건 과연 누구일까
'시스템 오류'라는 말을 더 이상 할 수 없도록 매장으로 직접 찾아가서 지원서를 넣었다. 채용담당 매니저가 다음날 오후 1시에 출근한다고 해서 기다렸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직접 매장에 찾아갔으나 다른 매니저만 있었다. 점장은 그날부터 그 다음 주까지 휴가라고 했다. 매니저가 점장에게 연락해서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 다음날, 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채용하지 않겠다"는 답을 들었다. 나보다 좋은 조건의 남자 지원자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휴학생인데다가 아침·저녁·야간 모든 시간대 근무가 가능하고, 매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거주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계약 당시 계약일자를 써넣고 사인을 한 근로계약서는 점장만 가지고 있다. 나에게 발부한 근로계약서는 백지다. 결국 나에게 남은 것은 백지 근로계약서 한 장 뿐이다. 제대로 된 계약서도 못 받고 시작한 내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는 이렇게 끝났다.
만약 내가 근무시간 조작에 침묵했더라면, 일방적인 계약 위반을 묵인했더라면, 수많은 화상 상처들을 조용히 참았다면, 착취에 가까운 노동 강도를 수용했다면, 나는 여전히 맥도날드 매장에서 일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결국 나의 노동조합활동이 불편한 건, 동료들이 아니라 본사와 점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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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도날드의 백지 근로계약서 계약 당시 계약일자와 사인을 한 근로계약서는 점장만 가지고 있다. 나에게 발부한 근로계약서는 백지다.
ⓒ 알바노조
<당신은 왜 해고되었습니까?>
알바노조는 알바 노동자들이 어떤 이유와 과정을 거쳐 함부로 해고되는지 알아보고 대책을 마련해보기 위해 인터넷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해고된 적이 있다면, 잠깐만 시간을 내어 설문에 응해주세요!
☞ 설문조사 참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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